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탈리아 통일 (문단 편집) == 부작용 == 이탈리아 북부는 [[서양]]의 전형적인 [[근대화]] 경로인 [[시민사회]]의 발전, [[내셔널리즘]] 및 [[자유주의]]를 체험했다. 이탈리아 민족주의도 북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근대화에서 소외되었던 남부는 북부만큼의 민족의식이 없었고 따라서 많은 남부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의 통일은 단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을 주축으로 한 북부에 의해 남부가 강제 병합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통일 이탈리아 왕국은 민족의식이 약했던 남부 이탈리아인에게 이탈리아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느라 애를 먹었는데 통일 이후로도 남부에서 [[양시칠리아 왕국]] 왕당파와 지역 주민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그 예이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북부와 남부 사람들은 서로를 멸시했다. 북부에서는 남부 사람들을 농사나 짓는 거지같은 촌놈으로 멸시했으며 남부에서는 북부 사람들을 옥수수죽이나 쳐먹는 무리들이라고 멸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탈리아군]]이 오합지졸 군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근본적으로 군대에서 북부 출신과 남부 출신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상호간에 경멸과 조롱을 일삼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 [[이탈리아/사회/남북문제|남북문제]]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아 이탈리아 사회의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는 [[독일]], [[프랑스]] 급으로 잘 사는 것에 비해 남부의 경제력은 구 공산권 국가였던 [[헝가리]], [[폴란드]]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북부와 남부는 상호간에 문화적으로도 이질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질 의식도 분리 의식 못지않게 커 남부문제는 민족 갈등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고[* 정치적으로 통일된 [[이탈리아]]가 없었던 것과는 별개로 [[이탈리아/문화|이탈리아 문화권]] 및 같은 이탈리아 반도 지역 국가들이라는 의식은 존재했으며 [[이탈리아어]]의 근원이 된 [[토스카나어]]가 반도 전역에서 식자층과 상인들의 [[링구아 프랑카]]로 이용되었다. 가장 이질적인 남부의 [[양시칠리아 왕국]]도 공식 언어는 토스카나어였다. [[지역주의]]가 강하고 국가 의식이 약한 건 사실이었지만 [[독일 통일]]처럼 큰 부작용 없이 통일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 정도 동질의식도 없었으면 통일운동 자체가 일어나기 힘들었다.] (교육 수준이 낮고 민족 의식이 미약했기 때문이었지만) 남부 농민들의 상당수는 통일과 분리주의 모두에 관심이 없었다. 통일운동과 시칠리아 독립을 위시한 분리주의 모두 귀족과 부르주아를 위시한 지주층의 관심 분야로 농민들은 봉건제 폐지 당시 사라진 공유지 용익권 부활 혹은 토지 재분배를 주장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농민층의 반(反) 혁명 운동인 [[https://it.wikipedia.org/wiki/Sanfedismo|산페디스타]]로 인해 자유주의 파르테노페아 공화국 수립에 실패한 남부 혁명 세력은 이후 카르보나리 반란이나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정복 시 토지 문제의 원흉이 [[양시칠리아 왕국|양시칠리아]] 왕실인 것처럼 선동하여 농민층의 지지를 얻어내나 토지 재분배를 요구하는 농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가리발디의 부관 [[https://it.wikipedia.org/wiki/Nino_Bixio|니노 빅시오]](Nino Bixio)가 붉은 셔츠단 진군 와중에 토지 재분배를 요구하는 시칠리아 [[https://it.wikipedia.org/wiki/Bronte|브론테]] 지역 농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있다.] 통일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이후 지주층을 대변하는 통일 정부에 대한 반감, 토지 중과세와 징병제를 위시한 근대 제도의 이질감, 반동 세력의 충동질 등이 엮여 [[https://it.wikipedia.org/wiki/Brigantaggio_postunitario_italiano|브리간타조]](Brigantagio) 반란이 남부 전역에서 일어났고 신생 [[이탈리아 왕국]] 정부는 이를 억압적으로 진압한 뒤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시스템을 강요해 반도 전역에 중앙집권 시스템을 확립했다.[* 역사적으로는 이를 '''[[피에몬테]]화(Piemontesizzazione)'''라고 부른다.] 지금의 남북간 지역감정은 이러한 갈등을 겪은 후 경제격차가 벌어지면서 격화된 것에 가깝고 역사적 발전 경로 차이와 사회 구조 차이로 인한 이질감 외에 완전한 [[독일어권]]인 [[쥐트티롤]]을 제외하면 [[분리주의]] 의식이 딱히 크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시칠리아도 약간이나마 있기는 하지만 쥐트티롤만큼 크지는 않다. 애초에 같은 이탈리아어 문화권인 데다 시칠리아는 과거부터 [[이탈리아 반도]]의 연장으로 여겨졌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